[정경의 오페라 9단] 알마비바의 사랑이 특별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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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perama 작성일2016-11-08 조회5,77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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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연애'라 부르는 형태의 관계는 과연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 과정을 거쳐 결혼 서약을 맺고 평생을 함께 살아간다는 오늘날의 보편적인 연애 및 결혼 개념은 불과 300년 전까지만 해도 매우 낯설고 찾아보기 힘든 개념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연애라는 말에는 자유의지에서 발현된 애정, 연애 놀음, 성적인 접촉 등 모든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자유의지라는 전제는 발현된 애정이 곧 결혼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일대일, 혹은 상대를 향한 헌신을 전제로 한 연애 관념은 19세기와 20세기 초를 거쳐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달리 말해 근대 이전의 서양 사회에서는 오늘날처럼 하나의 상대만을 특정하여 ‘연애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性의) 역사'를 집필한 장 루이 플랑드랭에 의하면 중세 유럽에서는 사랑과 결혼이 엄연히 분리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웠다고 한다. 당시 애정 풍속은 신분에 따라 '궁정식 사랑' 또는 '시골식 사랑'으로 나뉘었다. 이 두 사랑의 공통점은 결혼을 곧 출산을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는 점이다.
결혼은 남성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동물적인 이유에서 마련된 제도였으며, 진정한 애정의 대상은 결혼과 철저히 분리되었다. 따라서 귀족들 사이에서는 재산이나 권력을 보전하기 위한 결혼이 성행했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에는 당시의 연애, 결혼 관념이 어떻게 변화하였으며 그러한 변화 속에서 서로 다른 관념을 가진 인물들이 어떻게 충돌하는지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자유연애를 지지하는 알마비바와 피가로, 로지나와 구습에 충실하여 지극히 사적인 이익만을 위한 결혼을 추구하는 바르톨로 박사와 그 조력자인 바실리오 사이의 갈등은 중세의 연애, 결혼관이 오늘날과 유사한 형태로 변모하던 과도기의 사회상을 잘 보여준다.
로지나라는 여성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앓이를 하는 알마비바 백작은 그녀와의 인연이 신분, 재산 등의 배경과 무관한 진정한 사랑으로 맺어지길 바란다. 오늘날을 기준으로 삼으면 백작은 그저 낭만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구애자일 뿐이지만 신분제도가 확고하던 중세 시대에서는 알마비바 백작의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매우 독특하고 파격적인 것이었다.
자신의 권력이나 재력을 이용하여 적당히 '시골식 사랑'을 나눌 수도 있었음에도 백작은 로지나와의 순수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결혼을 꿈꾸며 발코니 창 너머의 로지나를 향해 노래를 부른다.
그가 신분이나 출신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은 극 중 행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이발사인 피가로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때로는 귀족으로서의 모습을 버리고 군인이나 음악교사로 변장하곤 한다. 술 취한 연기를 선보이기도 하고 음악 교사인 척하며 바르톨로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기도 한다. 극이 절정을 향해 치달으면서 급기야는 피가로와 함께 벽을 오르기까지 한다.
알마비바 백작의 이러한 파격적인 면모는 중세 시대의 종반부를 삼키기 시작한 거대한 흐름, 이른바 근대화의 단적인 모습이었다. 유럽에서 ‘연애결혼’이라는 단어는 무려 1870년대에 이르러서야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876년에 발간된 프랑스어 사전에 처음으로 '연애결혼'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였으며, 그 의미 풀이는 '지위/재산 본위, 혹은 이익을 위한 의 결혼의 반대말'이었다.
계몽주의라는 큰 흐름에 입각하면 구습이나 신분, 기타 조건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유의지로서 다른 이와 사랑하는 '자유연애'는 그 자체가 자유의 실천이자 실현이었다. 특히 이 개념은 정략결혼이 일반화되어 있던 귀족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즉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에 등장하는 알마비바 백작은 비단 연애뿐만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사상을 알리고 소개한 자유주의자의 선봉장이었던 것이다.
<저작권자 © 국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연애라는 말에는 자유의지에서 발현된 애정, 연애 놀음, 성적인 접촉 등 모든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자유의지라는 전제는 발현된 애정이 곧 결혼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일대일, 혹은 상대를 향한 헌신을 전제로 한 연애 관념은 19세기와 20세기 초를 거쳐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달리 말해 근대 이전의 서양 사회에서는 오늘날처럼 하나의 상대만을 특정하여 ‘연애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性의) 역사'를 집필한 장 루이 플랑드랭에 의하면 중세 유럽에서는 사랑과 결혼이 엄연히 분리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웠다고 한다. 당시 애정 풍속은 신분에 따라 '궁정식 사랑' 또는 '시골식 사랑'으로 나뉘었다. 이 두 사랑의 공통점은 결혼을 곧 출산을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는 점이다.
결혼은 남성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동물적인 이유에서 마련된 제도였으며, 진정한 애정의 대상은 결혼과 철저히 분리되었다. 따라서 귀족들 사이에서는 재산이나 권력을 보전하기 위한 결혼이 성행했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에는 당시의 연애, 결혼 관념이 어떻게 변화하였으며 그러한 변화 속에서 서로 다른 관념을 가진 인물들이 어떻게 충돌하는지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자유연애를 지지하는 알마비바와 피가로, 로지나와 구습에 충실하여 지극히 사적인 이익만을 위한 결혼을 추구하는 바르톨로 박사와 그 조력자인 바실리오 사이의 갈등은 중세의 연애, 결혼관이 오늘날과 유사한 형태로 변모하던 과도기의 사회상을 잘 보여준다.
로지나라는 여성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앓이를 하는 알마비바 백작은 그녀와의 인연이 신분, 재산 등의 배경과 무관한 진정한 사랑으로 맺어지길 바란다. 오늘날을 기준으로 삼으면 백작은 그저 낭만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구애자일 뿐이지만 신분제도가 확고하던 중세 시대에서는 알마비바 백작의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매우 독특하고 파격적인 것이었다.
자신의 권력이나 재력을 이용하여 적당히 '시골식 사랑'을 나눌 수도 있었음에도 백작은 로지나와의 순수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결혼을 꿈꾸며 발코니 창 너머의 로지나를 향해 노래를 부른다.
그가 신분이나 출신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은 극 중 행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이발사인 피가로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때로는 귀족으로서의 모습을 버리고 군인이나 음악교사로 변장하곤 한다. 술 취한 연기를 선보이기도 하고 음악 교사인 척하며 바르톨로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기도 한다. 극이 절정을 향해 치달으면서 급기야는 피가로와 함께 벽을 오르기까지 한다.
알마비바 백작의 이러한 파격적인 면모는 중세 시대의 종반부를 삼키기 시작한 거대한 흐름, 이른바 근대화의 단적인 모습이었다. 유럽에서 ‘연애결혼’이라는 단어는 무려 1870년대에 이르러서야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1876년에 발간된 프랑스어 사전에 처음으로 '연애결혼'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였으며, 그 의미 풀이는 '지위/재산 본위, 혹은 이익을 위한 의 결혼의 반대말'이었다.
계몽주의라는 큰 흐름에 입각하면 구습이나 신분, 기타 조건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유의지로서 다른 이와 사랑하는 '자유연애'는 그 자체가 자유의 실천이자 실현이었다. 특히 이 개념은 정략결혼이 일반화되어 있던 귀족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즉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에 등장하는 알마비바 백작은 비단 연애뿐만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사상을 알리고 소개한 자유주의자의 선봉장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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