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의 오페라 9단] '노르마'는 막장 드라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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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perama 작성일2016-10-18 조회5,35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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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신을 경외하고 숭배하는 인간들의 사랑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플롯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오페라 '노르마'에서는 드루이드의 율법과 극 사이마다 신의 목소리가 합창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한 개인이 넘어서기 힘든 초월적인 대상을 의미한다.
필연적으로 인간은 그와 같은 신의 의지에 반하는 일을 저지르고 마는데, 노르마와 아달지자의 고뇌가 모두 이에 해당한다. 특히나 이들은 신을 받드는 승려이자 제사장이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와 같은 입장은 그들로 하여금 신의 의지에 반하는 결정과 따라야 할 율법 사이에서 보다 치열하게 갈등하도록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결국 그들은 신의 뜻을 따르지도 그에 완벽하게 항거하거나 거부하지도 못하는데, 이와 같은 갈등은 개인에게 스스로를 희생하여 모든 것을 결자해지한다는 선택지만을 남기며 이야기를 비극으로 몰아가곤 한다.
신을 추종하는 자가 우여곡절 끝에 스스로를 희생하는 결말은 숭고함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나 한편으로는 이를 통속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는 곧 연출 방향의 차이가 되고, 그 결과 실제 오페라 작품은 같은 작품이더라도 연출가의 해석에 따라 매우 다른 형식이나 뉘앙스를 품은 채 제작되기도 한다.
인간사에서 신의 뜻을 따르지 못한 자책감과 무력함에 자신을 희생하는 주인공의 희생정신과 숭고함에 초점을 맞추면 오페라 '노르마'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형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을 받드는 이들의 우두머리임에도 사적인 감정에 더욱 충실했던 노르마.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 놓여 갈팡질팡하는 아달지자는 신의 율법과 인간적인 사랑 사이에서 방황한다.
특히 노르마는 자신에게 닥친 진퇴양난의 상황이 모두 자신의 부덕함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인정하고 또 모두의 앞에서 선언하기에 이른다. 신의 율법과 사랑을 모두 지키기 위한 길은 스스로를 배신자라고 규정짓는 것뿐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다른 이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노르마의 행동이 숭고하고 비장한 모습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다.
또한 온갖 치정과 정치 문제로 주변을 어수선하게 만든 폴리오네의 죽음도 '순교자 노르마'의 마지막 결정에 동조하고 그 뒤를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그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갖게 만든다. 벨리니가 작곡한 음악들은 오페라 '노르마'가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담고 있는 숭고함과 희생정신에 큰 무게 중심을 두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현대에 이르러서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해석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바로 오페라 '노르마'의 이야기를 불륜극처럼 꾸미는 것이다. TV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삼각관계와 연적 간의 대결구도, 그로부터 발생하는 갈등과 파국을 작품 플롯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출이 다소 충격적이고 심지어는 작품을 훼손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실제로 오페라 '노르마'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TV에서 막장이라고 지칭하는 드라마들과 그 구성에 있어 큰 차이가 없다.
다만 현대의 드라마와 오페라 '노르마'의 이야기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현대의 드라마들은 '막장'이라고도 표현되는 세속적 저속함을 그 무기로 이용하는 반면 오페라 '노르마'는 그러한 저속함으로부터의 탈출구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신(神)'이라는 절대적 권능이 존재하고 기능하는 배경을 갖추었기에, 노르마는 민족의 배반자임에도 두 아이의 애틋한 엄마로도 그려질 수 있으며 질투에 불타 사랑싸움을 벌이는 여인임에도 신의 뜻에 목숨을 바치는 숭고한 순교자로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작권자 © 국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필연적으로 인간은 그와 같은 신의 의지에 반하는 일을 저지르고 마는데, 노르마와 아달지자의 고뇌가 모두 이에 해당한다. 특히나 이들은 신을 받드는 승려이자 제사장이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와 같은 입장은 그들로 하여금 신의 의지에 반하는 결정과 따라야 할 율법 사이에서 보다 치열하게 갈등하도록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결국 그들은 신의 뜻을 따르지도 그에 완벽하게 항거하거나 거부하지도 못하는데, 이와 같은 갈등은 개인에게 스스로를 희생하여 모든 것을 결자해지한다는 선택지만을 남기며 이야기를 비극으로 몰아가곤 한다.
신을 추종하는 자가 우여곡절 끝에 스스로를 희생하는 결말은 숭고함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나 한편으로는 이를 통속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는 곧 연출 방향의 차이가 되고, 그 결과 실제 오페라 작품은 같은 작품이더라도 연출가의 해석에 따라 매우 다른 형식이나 뉘앙스를 품은 채 제작되기도 한다.
인간사에서 신의 뜻을 따르지 못한 자책감과 무력함에 자신을 희생하는 주인공의 희생정신과 숭고함에 초점을 맞추면 오페라 '노르마'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형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을 받드는 이들의 우두머리임에도 사적인 감정에 더욱 충실했던 노르마.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 놓여 갈팡질팡하는 아달지자는 신의 율법과 인간적인 사랑 사이에서 방황한다.
특히 노르마는 자신에게 닥친 진퇴양난의 상황이 모두 자신의 부덕함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인정하고 또 모두의 앞에서 선언하기에 이른다. 신의 율법과 사랑을 모두 지키기 위한 길은 스스로를 배신자라고 규정짓는 것뿐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다른 이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노르마의 행동이 숭고하고 비장한 모습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다.
또한 온갖 치정과 정치 문제로 주변을 어수선하게 만든 폴리오네의 죽음도 '순교자 노르마'의 마지막 결정에 동조하고 그 뒤를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그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갖게 만든다. 벨리니가 작곡한 음악들은 오페라 '노르마'가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담고 있는 숭고함과 희생정신에 큰 무게 중심을 두었음을 보여준다.
반면 현대에 이르러서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해석을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바로 오페라 '노르마'의 이야기를 불륜극처럼 꾸미는 것이다. TV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삼각관계와 연적 간의 대결구도, 그로부터 발생하는 갈등과 파국을 작품 플롯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출이 다소 충격적이고 심지어는 작품을 훼손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실제로 오페라 '노르마'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TV에서 막장이라고 지칭하는 드라마들과 그 구성에 있어 큰 차이가 없다.
다만 현대의 드라마와 오페라 '노르마'의 이야기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현대의 드라마들은 '막장'이라고도 표현되는 세속적 저속함을 그 무기로 이용하는 반면 오페라 '노르마'는 그러한 저속함으로부터의 탈출구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신(神)'이라는 절대적 권능이 존재하고 기능하는 배경을 갖추었기에, 노르마는 민족의 배반자임에도 두 아이의 애틋한 엄마로도 그려질 수 있으며 질투에 불타 사랑싸움을 벌이는 여인임에도 신의 뜻에 목숨을 바치는 숭고한 순교자로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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