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의 오페라 9단] 오페라는 죽지 않았다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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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perama 작성일2017-07-25 조회14,28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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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현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대중의 관심을 끈 오페라 작품은 주로 영화감독, 연극 연출가, 디자인 전문가들이 연출을 맡아 무대에 올린 작품들이었다. 과거에는 성악이나 기악 전공자가 오페라 작품 전반의 연출을 도맡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보다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연출가들에게 점차 자리를 넘기게 되었다. 이들은 무대, 조명, 의상까지 총괄하면서 작품의 방향과 콘셉트 설정 작업 전체를 총괄하였다.
문제는 오페라 자체가 파격적인 재해석이나 고전적 전통미를 최대한 부각하려는 등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에 익숙한 대중들의 흥미를 끌기엔 역부족이라는 점이었다. 오페라의 가장 큰 과제는 바로 현대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가장 큰 변화는 외모와 연기력에 무게중심을 둔 캐스팅이었다. 외양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시대를 맞아 성악가들은 더 이상 가창력만으로 승부할 수 없게 되었다.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와 체형이면 제아무리 가창 실력이 뛰어난 가수도 오디션에서 낙방하게 된 것이다. 손짓이나 표정, 걸음걸이만 그럴듯해서는 오페라 무대에 서기 어려워진 것이었다. 구르고 달리는 것은 물론 작품에 따라서는 무대에 드러눕거나 현실감 넘치는 액션까지 소화해야 했다.
오히려 연기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이를 위해 가창력이나 음악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 양보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점잖고 노래 잘 부르는 오페라 가수’의 이미지는 이미 옛말이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고전적인 예술을 지향하는 성악가들은 연출가와 다툼을 벌이기도 하고 성악가가 작품을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두 번째로 등장인물의 노출을 들 수 있다. 오페라 무대에 본격적으로 에로티시즘이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에서 성악가들이 반라 혹은 전라의 몸으로 무대에 등장하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과거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없어 비유적으로 처리한 장면들이 이제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무대 위에 구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오페라 '돈 조반니'의 제1막 막바지 조반니가 개최한 파티 장면에서는 여성 앙상블들이 속옷 차림으로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제2막에서 체를리나가 마제토를 달래며 위로하는 아리아 '불쌍한 당신(Vedrai carino)'에서는 보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성적 유혹을 묘사한다. 오페라 '리골레토'에서는 제1막 만토바 백작과 어릿광대 리골레토가 여성들을 희롱하는 장면에서 성추행 장면을 실제로 재연하는 연출을 보일 정도였다.
때로는 극단적인 폭력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2003년 바르셀로나에서 무대에 오른 '돈 조반니'는 한편의 스릴러 영화를 연상케 한다. 결말 장면에서 조반니가 석상에 끌려 지옥으로 향는 대신 나머지 등장인물들이 등장해 그를 칼로 찔러 죽이는 섬뜩한 결말을 보여준다.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는 고전 예술의 기품과 중량감을 내던지는 행위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페라에 기대하던 이미지와 너무 다른 내용으로 오히려 혼란에 빠지는 관객들도 생겨났던 것이다.
◇ 파격적 연출의 시작
원작을 파격적으로 재해석하여 처음 주목받은 작품은 1976년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열린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였다. 이는 100주년 기념 공연으로서 바이로이트 극장은 바그너 작품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이 공연의 지휘는 오페라 '보체크'에 극찬을 남긴 피에로 불레즈, 연출은 파르티스 셰로가 맡았다. 이들은 모두 프랑스인으로 독일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품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외국인이 담당한다는 사실에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공연 후 벌어진 사태에 비하면 이러한 논란은 시작에 불과했다.
'니벨룽의 반지'라는 작품은 신비에 싸인 신화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신들의 성, 라인강, 거대한 신목, 군주의 궁정 등 판타지 영화에서 묘사하는 신과 요정들의 세계나 중세 유럽인들의 성에 가까운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작품 속의 몽환적인 풍경이 100주년 기념 공연을 맞아 모두 현대 도시로 바뀌어버렸다. 고성은 온데간데없이 그 자리를 오래된 철교나 낡은 공장 폐허가 대신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연출은 격렬한 반발을 야기했다. 심지어 작품에 출연하는 오페라 가수가 도저히 연출을 납득할 수 없다며 배역을 포기하겠다는 엄포를 놓을 정도였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에게서 항의가 빗발친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와중에 새로운 시도와 발상의 전환에 높은 점수를 매긴 비평가와 관객들도 소수 존재했는데 바로 이들이 결국 새로운 예술을 온전히 음미한 진정한 승자가 되었다. 이 1976년의 공연 영상이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영상을 선정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자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00주년 기념 공연에 출연한 당대 최고 성악가들의 노래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가 지니고 있는 예술성, 기념 공연이라는 특별함이 한몫했지만 연출 자체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현대적 배경과 기존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절묘하고 조화롭게 어우러졌다는 점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이 공연을 계기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오페라 작품들이 점차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오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 선구자적인 역할도 함께 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저작권자 © 국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문제는 오페라 자체가 파격적인 재해석이나 고전적 전통미를 최대한 부각하려는 등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에 익숙한 대중들의 흥미를 끌기엔 역부족이라는 점이었다. 오페라의 가장 큰 과제는 바로 현대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가장 큰 변화는 외모와 연기력에 무게중심을 둔 캐스팅이었다. 외양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시대를 맞아 성악가들은 더 이상 가창력만으로 승부할 수 없게 되었다.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와 체형이면 제아무리 가창 실력이 뛰어난 가수도 오디션에서 낙방하게 된 것이다. 손짓이나 표정, 걸음걸이만 그럴듯해서는 오페라 무대에 서기 어려워진 것이었다. 구르고 달리는 것은 물론 작품에 따라서는 무대에 드러눕거나 현실감 넘치는 액션까지 소화해야 했다.
오히려 연기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이를 위해 가창력이나 음악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 양보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점잖고 노래 잘 부르는 오페라 가수’의 이미지는 이미 옛말이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고전적인 예술을 지향하는 성악가들은 연출가와 다툼을 벌이기도 하고 성악가가 작품을 거부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두 번째로 등장인물의 노출을 들 수 있다. 오페라 무대에 본격적으로 에로티시즘이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에서 성악가들이 반라 혹은 전라의 몸으로 무대에 등장하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과거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없어 비유적으로 처리한 장면들이 이제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무대 위에 구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오페라 '돈 조반니'의 제1막 막바지 조반니가 개최한 파티 장면에서는 여성 앙상블들이 속옷 차림으로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제2막에서 체를리나가 마제토를 달래며 위로하는 아리아 '불쌍한 당신(Vedrai carino)'에서는 보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성적 유혹을 묘사한다. 오페라 '리골레토'에서는 제1막 만토바 백작과 어릿광대 리골레토가 여성들을 희롱하는 장면에서 성추행 장면을 실제로 재연하는 연출을 보일 정도였다.
때로는 극단적인 폭력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2003년 바르셀로나에서 무대에 오른 '돈 조반니'는 한편의 스릴러 영화를 연상케 한다. 결말 장면에서 조반니가 석상에 끌려 지옥으로 향는 대신 나머지 등장인물들이 등장해 그를 칼로 찔러 죽이는 섬뜩한 결말을 보여준다.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는 고전 예술의 기품과 중량감을 내던지는 행위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오페라에 기대하던 이미지와 너무 다른 내용으로 오히려 혼란에 빠지는 관객들도 생겨났던 것이다.
◇ 파격적 연출의 시작
원작을 파격적으로 재해석하여 처음 주목받은 작품은 1976년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열린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였다. 이는 100주년 기념 공연으로서 바이로이트 극장은 바그너 작품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이 공연의 지휘는 오페라 '보체크'에 극찬을 남긴 피에로 불레즈, 연출은 파르티스 셰로가 맡았다. 이들은 모두 프랑스인으로 독일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품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외국인이 담당한다는 사실에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공연 후 벌어진 사태에 비하면 이러한 논란은 시작에 불과했다.
'니벨룽의 반지'라는 작품은 신비에 싸인 신화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신들의 성, 라인강, 거대한 신목, 군주의 궁정 등 판타지 영화에서 묘사하는 신과 요정들의 세계나 중세 유럽인들의 성에 가까운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작품 속의 몽환적인 풍경이 100주년 기념 공연을 맞아 모두 현대 도시로 바뀌어버렸다. 고성은 온데간데없이 그 자리를 오래된 철교나 낡은 공장 폐허가 대신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연출은 격렬한 반발을 야기했다. 심지어 작품에 출연하는 오페라 가수가 도저히 연출을 납득할 수 없다며 배역을 포기하겠다는 엄포를 놓을 정도였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에게서 항의가 빗발친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와중에 새로운 시도와 발상의 전환에 높은 점수를 매긴 비평가와 관객들도 소수 존재했는데 바로 이들이 결국 새로운 예술을 온전히 음미한 진정한 승자가 되었다. 이 1976년의 공연 영상이 '니벨룽의 반지' 4부작 영상을 선정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자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00주년 기념 공연에 출연한 당대 최고 성악가들의 노래뿐만 아니라 작품 자체가 지니고 있는 예술성, 기념 공연이라는 특별함이 한몫했지만 연출 자체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현대적 배경과 기존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절묘하고 조화롭게 어우러졌다는 점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이 공연을 계기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오페라 작품들이 점차 등장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오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 선구자적인 역할도 함께 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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