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의 오페라 9단] 카르멘, 그 철학의 이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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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perama 작성일2017-04-11 조회5,642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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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오페라 '카르멘' 초연이 실패한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당대 관객들에게 낯선 주제와 소재를 비롯해 복선이 암시하는 결말까지 기존의 작품들과는 모든 부분에서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프랑스 파리의 중산층 관객들이 지닌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작품이자 철학이었던 오페라 '카르멘'에 열광한 이들도 분명 존재했다. 발레 음악으로 유명한 작곡가 레오 들리브, 오페라 '파우스트'를 작곡한 샤를 구노, 비제의 친구이자 오페라 '베르테르', '노트르담의 곡예사' 등을 작곡한 마스네, 소설가인 알렉상드로 뒤마 피스에 이르기까지 예술인들은 이 작품에 큰 관심과 호감을 보였다. 그들은 관객, 평론가들과는 달리 작품에 매우 긍정적인 평을 남겼지만 이 사실은 당시 '카르멘'을 향한 거센 비난 여론에 묻히고 말았다.
이 작품은 파리를 벗어나 외국 무대에 오르고 난 뒤에야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대의 유명 작곡가 브람스는 카르멘의 예술성을 극찬했으며, 이 작품으로부터 큰 영감을 받은 나머지 무려 20회나 극장을 찾아 '카르멘'을 관람했다고 한다. 끝내 "비제를 포옹하기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 찾아갔을 것"이라는 평을 남긴 것을 보면 비제의 오페라 작품이 당대의 예술인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작곡가 슈트라우스는 오케스트라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으면 비제의 작품인 '카르멘'의 악보를 구해서 공부하라고 선언할 정도였다. 그는 "음표와 쉼표 어느 하나라도 버릴 것이 없다"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거장 차이코프스키는 "앞으로 10년 뒤 이 작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가 될 것"이라며 걸작의 성공을 확신했다.
오페라 '카르멘'에 숨겨진 인문학적 의미를 파악한 것은 다름 아닌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였다. 청년 시절의 니체는 자신의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다. 니체는 예술 본연의 정신을 구현하는 작곡가로 바그너를 꼽았으며, 실제 바그너와의 친분도 돈독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바그너가 오페라 '파르지팔' 등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자 니체는 바그너의 예술세계가 '기독교의 십자가 앞에서 침몰했다'고 비판한다. 바그너에게 큰 실망을 느낀 니체가 다음으로 주목한 오페라 작품이 바로 비제의 '카르멘'이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바그너의 경우'에서 오페라 '카르멘'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여주인공 젠타에게서는 감상주의적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사랑은 가혹하고 운명적이며, 냉소적이고 순진무구하면서도 잔인하다. 그래서 사랑은 자연적이다. 싸움은 사랑의 수단이고, 사랑의 근저에는 남녀 간의 철저한 증오가 놓여 있다. 나는 사랑의 본질을 이루는 비극적 정서가 이처럼 격렬하게 표현된 경우를 알지 못한다."
바그너의 오페라 주인공들에게 있어 비극은 피할 수 없는 귀결이었다. 따라서 관객들은 이러한 초월적인 운명이라는 요소로 인해 보다 쉽게 감상적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비극과 비교해 오페라 '카르멘'은 분명히 달랐다.
우선 팜므파탈 카르멘의 존재 자체가 기존의 여성상에서 완전히 어긋난 그림이었다. 동시에 집시라는 그녀의 출신은 법과 사회적 규범, 도덕적 잣대를 벗어던지는 동시에 그러한 가치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상징했다.
그녀는 어느 한 곳으로의 정착을 거부했다. 사랑, 보금자리, 신념 등 모든 면에서 그녀는 자유와 자신의 의지를 갈망했다. 극의 말미인 4막에서 그녀는 돈 호세를 향해 "나를 죽이든가, 지나가도록 놓아두라"라고 말한다. 이 선언에는 죽음과 자유를 동등한 무게로 여기는 그녀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느 한쪽에 억압되고 종속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 담긴 모든 철학적, 신학적, 사회적 쟁점들은 오페라 '카르멘'이 그저 치정사를 다룬 진부한 이야기가 아닌, 수많은 해석을 낳는 진정한 '고전'으로 거듭나도록 했다. 이러한 '파격'은 초연 때 관객들의 냉담과 외면을 피할 수 없었으나 결국 그 깊이와 가치를 인정받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파격적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저작권자 © 국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당시 프랑스 파리의 중산층 관객들이 지닌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작품이자 철학이었던 오페라 '카르멘'에 열광한 이들도 분명 존재했다. 발레 음악으로 유명한 작곡가 레오 들리브, 오페라 '파우스트'를 작곡한 샤를 구노, 비제의 친구이자 오페라 '베르테르', '노트르담의 곡예사' 등을 작곡한 마스네, 소설가인 알렉상드로 뒤마 피스에 이르기까지 예술인들은 이 작품에 큰 관심과 호감을 보였다. 그들은 관객, 평론가들과는 달리 작품에 매우 긍정적인 평을 남겼지만 이 사실은 당시 '카르멘'을 향한 거센 비난 여론에 묻히고 말았다.
이 작품은 파리를 벗어나 외국 무대에 오르고 난 뒤에야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대의 유명 작곡가 브람스는 카르멘의 예술성을 극찬했으며, 이 작품으로부터 큰 영감을 받은 나머지 무려 20회나 극장을 찾아 '카르멘'을 관람했다고 한다. 끝내 "비제를 포옹하기 위해서라면 지구 끝까지 찾아갔을 것"이라는 평을 남긴 것을 보면 비제의 오페라 작품이 당대의 예술인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작곡가 슈트라우스는 오케스트라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으면 비제의 작품인 '카르멘'의 악보를 구해서 공부하라고 선언할 정도였다. 그는 "음표와 쉼표 어느 하나라도 버릴 것이 없다"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거장 차이코프스키는 "앞으로 10년 뒤 이 작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가 될 것"이라며 걸작의 성공을 확신했다.
오페라 '카르멘'에 숨겨진 인문학적 의미를 파악한 것은 다름 아닌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였다. 청년 시절의 니체는 자신의 저서 '비극의 탄생'에서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다. 니체는 예술 본연의 정신을 구현하는 작곡가로 바그너를 꼽았으며, 실제 바그너와의 친분도 돈독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바그너가 오페라 '파르지팔' 등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자 니체는 바그너의 예술세계가 '기독교의 십자가 앞에서 침몰했다'고 비판한다. 바그너에게 큰 실망을 느낀 니체가 다음으로 주목한 오페라 작품이 바로 비제의 '카르멘'이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바그너의 경우'에서 오페라 '카르멘'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여주인공 젠타에게서는 감상주의적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사랑은 가혹하고 운명적이며, 냉소적이고 순진무구하면서도 잔인하다. 그래서 사랑은 자연적이다. 싸움은 사랑의 수단이고, 사랑의 근저에는 남녀 간의 철저한 증오가 놓여 있다. 나는 사랑의 본질을 이루는 비극적 정서가 이처럼 격렬하게 표현된 경우를 알지 못한다."
바그너의 오페라 주인공들에게 있어 비극은 피할 수 없는 귀결이었다. 따라서 관객들은 이러한 초월적인 운명이라는 요소로 인해 보다 쉽게 감상적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비극과 비교해 오페라 '카르멘'은 분명히 달랐다.
우선 팜므파탈 카르멘의 존재 자체가 기존의 여성상에서 완전히 어긋난 그림이었다. 동시에 집시라는 그녀의 출신은 법과 사회적 규범, 도덕적 잣대를 벗어던지는 동시에 그러한 가치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상징했다.
그녀는 어느 한 곳으로의 정착을 거부했다. 사랑, 보금자리, 신념 등 모든 면에서 그녀는 자유와 자신의 의지를 갈망했다. 극의 말미인 4막에서 그녀는 돈 호세를 향해 "나를 죽이든가, 지나가도록 놓아두라"라고 말한다. 이 선언에는 죽음과 자유를 동등한 무게로 여기는 그녀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느 한쪽에 억압되고 종속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 담긴 모든 철학적, 신학적, 사회적 쟁점들은 오페라 '카르멘'이 그저 치정사를 다룬 진부한 이야기가 아닌, 수많은 해석을 낳는 진정한 '고전'으로 거듭나도록 했다. 이러한 '파격'은 초연 때 관객들의 냉담과 외면을 피할 수 없었으나 결국 그 깊이와 가치를 인정받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파격적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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