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의 오페라 9단] 어긋남의 연속이 비극적 결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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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perama 작성일2017-03-17 조회7,045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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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인간은 누구나 타인을 향한 기대를 가지기 마련이며, 그러한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고 어긋날 때 실망을 느끼는 법이다. 이와 같은 어긋남이 반복될수록 기대는 중첩되어 더욱 커지고, 지속되는 어긋남이 끝내 어느 특이점에 도달하는 순간 가장 큰 슬픔과 상실감이 찾아온다.
오페라 '리골레토' 이야기가 진한 비극미를 머금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리골레토와 질다가 타인들에게 걸었던 희망, 사랑, 나아가 순수에 대한 기대가 남김없이 모두 배신당하기 때문이다.
질다는 교회에서 만난 만토바 공작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녀는 그가 가난한 대학생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질다가 공작과 함께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에서는 공작을 향한 그녀의 순수한 기대와 사랑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잘 가요, 당신만이 나의 희망, 안녕히, 내 사랑 영원히 변치 않으리."
그러나 그녀의 상대는 모두 거짓이었다. 만토바 공작에게 있어 사랑은 일종의 놀이였으며, 상대 여성은 지순한 사랑의 대상이 아닌 그저 유희를 위한 매개였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도 질다는 만토바 공작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한다.
제3막에서 질다는 만토바 공작이 자신에게 수작을 걸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막달레나를 유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끝내 공작에 대한 사랑을 지키며 그를 대신하여 죽음을 맞이한다.
아버지를 향한 그녀의 기대 역시 무참히 배신당한다. 리골레토는 그녀에게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을 정도였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는 부녀가 서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함을 의미하며, 결국 가장 큰 어긋남인 비극적 결말로 이어진다.
질다가 그토록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음에도 극 중에서 세상을 향한 자신의 믿음으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신당하는 것은 역시 광대인 리골레토였다. 그는 만토바 공작을 즐겁게 하기 위해 여성을 희롱하고 신하들을 욕보였다. 이 모습은 역설적으로 질다를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의 역할이자 그녀를 지키고자 하는 순수한 부성애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딸, 질다로 상징되는 순수를 지켜내고자 한 그의 바람은 그간 저질러 온 자신의 악행들로 인해 모조리 배신당하며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납치된 딸을 찾기 위해 궁정으로 달려간 리골레토는 자신과 친하다고 여겼던 신하들로부터 완전히 무시당하고 만다. 결국 그들의 방조로 인해 질다는 공작에게 겁탈당하고 만 것이다.
이에 리골레토는 공작을 암살하려 하지만 암살을 의뢰받은 살인청부업자 스파라푸칠레 역시 공작 대신 질다를 죽이는 결과를 낳으며 리골레토의 기대를 산산조각낸다. 이에 더해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이자 소중한 딸인 질다 역시 공작 대신 죽음을 택하며 리골레토를 완전한 나락으로 밀어 넣고 만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어긋나 버린 어느 광대의 이야기. 자신이 불행과 비통에 빠뜨린 모든 이들의 증오와 복수심이 몬테로네의 저주로 돌아온 순간부터 시작된 비극이 아니었을까.
◇ 여자의 마음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최고의 아리아로 손꼽히는 곡은 바로 'La donna e mobile', 곧 '여자의 마음'이다. 극 중 악역인 만토바 공작이 부르는 이 경쾌한 곡은 이야기 전개와 맞물려 작품의 비극성을 심화시킨다. 리골레토가 딸을 잃은 직후에도 공작은 여전히 즐겁게 이 노래를 불러대기 때문이다.
작곡가인 베르디는 이 곡의 상품성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아리아가 대단한 유명세를 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그가 선택한 전략은 비밀주의였다. 베르디는 초연 전날까지도 테너 가수에게 이 곡을 절대 다른 곳에서 부르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공연 당일, 제3막이 오르고 만토바 공작으로 분한 테너 가수가 무대에 올라 마침내 이 아리아를 부르는 순간 관객들은 모두 그 선율에 넋을 잃었다. 따라 하기 쉬운 멜로디에 재치 넘치는 가사, 유쾌함까지 겸비한 음악이 관객들의 뇌리와 가슴에 깊숙하게 박힌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하나같이 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이 역사적인 대히트곡, '여자의 마음'은 온 거리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저작권자 © 국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오페라 '리골레토' 이야기가 진한 비극미를 머금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리골레토와 질다가 타인들에게 걸었던 희망, 사랑, 나아가 순수에 대한 기대가 남김없이 모두 배신당하기 때문이다.
질다는 교회에서 만난 만토바 공작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녀는 그가 가난한 대학생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질다가 공작과 함께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에서는 공작을 향한 그녀의 순수한 기대와 사랑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잘 가요, 당신만이 나의 희망, 안녕히, 내 사랑 영원히 변치 않으리."
그러나 그녀의 상대는 모두 거짓이었다. 만토바 공작에게 있어 사랑은 일종의 놀이였으며, 상대 여성은 지순한 사랑의 대상이 아닌 그저 유희를 위한 매개였던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깨닫고도 질다는 만토바 공작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한다.
제3막에서 질다는 만토바 공작이 자신에게 수작을 걸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막달레나를 유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끝내 공작에 대한 사랑을 지키며 그를 대신하여 죽음을 맞이한다.
아버지를 향한 그녀의 기대 역시 무참히 배신당한다. 리골레토는 그녀에게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을 정도였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는 부녀가 서로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함을 의미하며, 결국 가장 큰 어긋남인 비극적 결말로 이어진다.
질다가 그토록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음에도 극 중에서 세상을 향한 자신의 믿음으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신당하는 것은 역시 광대인 리골레토였다. 그는 만토바 공작을 즐겁게 하기 위해 여성을 희롱하고 신하들을 욕보였다. 이 모습은 역설적으로 질다를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의 역할이자 그녀를 지키고자 하는 순수한 부성애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딸, 질다로 상징되는 순수를 지켜내고자 한 그의 바람은 그간 저질러 온 자신의 악행들로 인해 모조리 배신당하며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납치된 딸을 찾기 위해 궁정으로 달려간 리골레토는 자신과 친하다고 여겼던 신하들로부터 완전히 무시당하고 만다. 결국 그들의 방조로 인해 질다는 공작에게 겁탈당하고 만 것이다.
이에 리골레토는 공작을 암살하려 하지만 암살을 의뢰받은 살인청부업자 스파라푸칠레 역시 공작 대신 질다를 죽이는 결과를 낳으며 리골레토의 기대를 산산조각낸다. 이에 더해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이자 소중한 딸인 질다 역시 공작 대신 죽음을 택하며 리골레토를 완전한 나락으로 밀어 넣고 만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어긋나 버린 어느 광대의 이야기. 자신이 불행과 비통에 빠뜨린 모든 이들의 증오와 복수심이 몬테로네의 저주로 돌아온 순간부터 시작된 비극이 아니었을까.
◇ 여자의 마음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최고의 아리아로 손꼽히는 곡은 바로 'La donna e mobile', 곧 '여자의 마음'이다. 극 중 악역인 만토바 공작이 부르는 이 경쾌한 곡은 이야기 전개와 맞물려 작품의 비극성을 심화시킨다. 리골레토가 딸을 잃은 직후에도 공작은 여전히 즐겁게 이 노래를 불러대기 때문이다.
작곡가인 베르디는 이 곡의 상품성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아리아가 대단한 유명세를 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그가 선택한 전략은 비밀주의였다. 베르디는 초연 전날까지도 테너 가수에게 이 곡을 절대 다른 곳에서 부르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공연 당일, 제3막이 오르고 만토바 공작으로 분한 테너 가수가 무대에 올라 마침내 이 아리아를 부르는 순간 관객들은 모두 그 선율에 넋을 잃었다. 따라 하기 쉬운 멜로디에 재치 넘치는 가사, 유쾌함까지 겸비한 음악이 관객들의 뇌리와 가슴에 깊숙하게 박힌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하나같이 이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이 역사적인 대히트곡, '여자의 마음'은 온 거리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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