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의 오페라 9단] 코르티잔의 순수, 상식 넘은 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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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perama 작성일2017-02-14 조회7,152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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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매일 똑같은 것만 요구하고, 돈만 지불하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 남자들에 질리고 말았어. 만약 우리처럼 천한 일을 시작하려는 여인들이 이런 내막을 안다면, 차라리 가정부가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거야. 그렇지만 화려한 옷과 마차, 다이아몬드에 대한 허영심이 우리를 짓누르고 말지. 육신도 마음도 아름다움도 점점 닳아 없어지고, 상대를 파멸시키는 동시에 우리 자신도 망가지고 마는 거야."
소설 '동백꽃 여인'과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들인 마르그리트와 비올레타 이야기의 비극성을 파악하기 위해선 그들의 정체성인 '코르티잔'이라는 직업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저 한국의 기생과 같은 직업이라고 단순히 치부하기는 어렵다. 시대에 따른 사회적 흐름과 배경이 그들의 탄생을 촉발한 까닭이다.
19세기 파리에는 성공과 출세만을 꿈꾸고 무작정 상경한 가난한 아가씨들이 많았다. 이들 대부분은 생계를 잇기 위해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 하루 열여섯 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을 견뎌야 했다. 그마저도 벌이가 충분치 않아 빈곤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주로 입어야 했던 후줄근한 잿빛 작업복을 지칭하는 '그리제트'라는 단어가 그들을 부르는 호칭이 될 정도였다. 이 그리제트들 중 빼어난 미모와 지성을 갖춘 여성들이 재산이 많은 부르주아의 눈에 띄기 시작했고, 부르주아들의 후원을 받게 된다. 그들은 부르주아들과 함께 파리의 제9구역 근처에 있는 롤레트 성당 근처의 무도회장을 자주 찾게 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롤레트'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사회적 신상류층인 부르주아들의 애첩 역할을 하는 이 롤레트들 중 가장 상위에 입지를 둔 여성들을 두고 '코르티잔'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부르주아 중에서도 가장 재산이 많거나 국가의 요직, 왕족 등 최고의 지위를 누리는 이들의 정부가 되었다.
그들은 정식 신분만 귀족이 아닐 뿐 엄청난 부와 사치를 누리며 실제 귀족 여인들보다도 훨씬 자유분방하고 진취적인 삶을 구가하였다. 당대 여성들에게 코르티잔은 질시의 대상이자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으며, 그림자 속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얼마나 성공적이고 자유로우며 화려한가와는 무관하게 코르티잔들의 삶은 늘 불행이라는 땅에 한쪽 발을 딛고 살아가는 나날과도 같았다. 이들의 삶은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 경쟁, 질투로 인해 소모적일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상경하여 그리제트, 롤레트, 코르티잔이라는 과정을 거쳐 마련한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온갖 지식과 소양을 습득하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었으며, 강박적으로 세월과 역행하는 자신의 미모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첫 문단에서 소개한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꽃 여인'의 한 구절은 코르티잔들의 삶이 어떠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코르티잔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고울 수 없었다. 상류 계층의 비호 하에 있다고는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거래였고, 결국 사회적 인식 속에서 그들의 정체성은 권력과 재력에 기생하는 천박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베르디는 극 중 주인공인 코르티잔, 비올레타에게 숭고함과 고귀함을 부여했다. 이는 당대 관객들은 물론 사회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타락한 사회에서 희생당하는 화류계 여성의 순수한 사랑이야기라는 주제는 코르티잔의 순수성을 따지기도 전에 당시 상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개념이었다.
이러한 파격으로 인해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초연 무대는 실패로 끝난다. 당시 초연 소프라노가 덩치가 커 병약한 역할의 비올레타 역과 어울리지 않기도 했지만, 그보다 당대 사회가 '코르티잔의 순수'에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도발적인 내용을 담은 오페라들은 이야기의 배경을 옛날에 있었던 일, 혹은 먼 땅에서 일어난 일로 각색하여 사회적인 충격을 완화시키곤 했는데,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그와 같은 작위적인 시간, 공간적 배경을 설정하지 않아 관객들에게 더욱 큰 충격을 안겼다.
자신들이 천하다고 손가락질하고 수군대던 화류계 여성이 순수한 사랑을 지키려다가 사회적 병폐와 타락으로 인해 희생과 불운을 감수하게 된다는 잔혹 드라마에 관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이 작품은 검열을 피해갈 수 없었고, 베르디는 시대적인 배경을 17세기로 수정하게 된다. 그럼에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는 베르디가 역설을 통해 전하려 한 사회적 모순에 대한 비판과 코르티잔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고도 순수한 사랑을 갈구한 한 여성의 굴곡진 삶이 잔향처럼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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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백꽃 여인'과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들인 마르그리트와 비올레타 이야기의 비극성을 파악하기 위해선 그들의 정체성인 '코르티잔'이라는 직업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저 한국의 기생과 같은 직업이라고 단순히 치부하기는 어렵다. 시대에 따른 사회적 흐름과 배경이 그들의 탄생을 촉발한 까닭이다.
19세기 파리에는 성공과 출세만을 꿈꾸고 무작정 상경한 가난한 아가씨들이 많았다. 이들 대부분은 생계를 잇기 위해 열악한 환경의 공장에서 하루 열여섯 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을 견뎌야 했다. 그마저도 벌이가 충분치 않아 빈곤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주로 입어야 했던 후줄근한 잿빛 작업복을 지칭하는 '그리제트'라는 단어가 그들을 부르는 호칭이 될 정도였다. 이 그리제트들 중 빼어난 미모와 지성을 갖춘 여성들이 재산이 많은 부르주아의 눈에 띄기 시작했고, 부르주아들의 후원을 받게 된다. 그들은 부르주아들과 함께 파리의 제9구역 근처에 있는 롤레트 성당 근처의 무도회장을 자주 찾게 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롤레트'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사회적 신상류층인 부르주아들의 애첩 역할을 하는 이 롤레트들 중 가장 상위에 입지를 둔 여성들을 두고 '코르티잔'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부르주아 중에서도 가장 재산이 많거나 국가의 요직, 왕족 등 최고의 지위를 누리는 이들의 정부가 되었다.
그들은 정식 신분만 귀족이 아닐 뿐 엄청난 부와 사치를 누리며 실제 귀족 여인들보다도 훨씬 자유분방하고 진취적인 삶을 구가하였다. 당대 여성들에게 코르티잔은 질시의 대상이자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으며, 그림자 속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얼마나 성공적이고 자유로우며 화려한가와는 무관하게 코르티잔들의 삶은 늘 불행이라는 땅에 한쪽 발을 딛고 살아가는 나날과도 같았다. 이들의 삶은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 경쟁, 질투로 인해 소모적일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상경하여 그리제트, 롤레트, 코르티잔이라는 과정을 거쳐 마련한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온갖 지식과 소양을 습득하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었으며, 강박적으로 세월과 역행하는 자신의 미모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첫 문단에서 소개한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꽃 여인'의 한 구절은 코르티잔들의 삶이 어떠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코르티잔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고울 수 없었다. 상류 계층의 비호 하에 있다고는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거래였고, 결국 사회적 인식 속에서 그들의 정체성은 권력과 재력에 기생하는 천박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베르디는 극 중 주인공인 코르티잔, 비올레타에게 숭고함과 고귀함을 부여했다. 이는 당대 관객들은 물론 사회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타락한 사회에서 희생당하는 화류계 여성의 순수한 사랑이야기라는 주제는 코르티잔의 순수성을 따지기도 전에 당시 상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개념이었다.
이러한 파격으로 인해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초연 무대는 실패로 끝난다. 당시 초연 소프라노가 덩치가 커 병약한 역할의 비올레타 역과 어울리지 않기도 했지만, 그보다 당대 사회가 '코르티잔의 순수'에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도발적인 내용을 담은 오페라들은 이야기의 배경을 옛날에 있었던 일, 혹은 먼 땅에서 일어난 일로 각색하여 사회적인 충격을 완화시키곤 했는데,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그와 같은 작위적인 시간, 공간적 배경을 설정하지 않아 관객들에게 더욱 큰 충격을 안겼다.
자신들이 천하다고 손가락질하고 수군대던 화류계 여성이 순수한 사랑을 지키려다가 사회적 병폐와 타락으로 인해 희생과 불운을 감수하게 된다는 잔혹 드라마에 관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이 작품은 검열을 피해갈 수 없었고, 베르디는 시대적인 배경을 17세기로 수정하게 된다. 그럼에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는 베르디가 역설을 통해 전하려 한 사회적 모순에 대한 비판과 코르티잔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고도 순수한 사랑을 갈구한 한 여성의 굴곡진 삶이 잔향처럼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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